어렸을 적에는 집 뒤 작은 산에서 진달래도 따먹고, 찔레가지도 꺾어먹으며 지냈지요. 질경이를 서로 잡아당기는 놀이도 하고,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린 띠(삐비)를 뽑아 껌처럼 씹으며 걸어왔어요. 우리 어렸을적 누구나 해보았던 일이겠지요. 그렇게 자연과 함께 생활해왔어도 들꽃의 존재를 별로 느끼지 못하고 지낸 것같아요.

세월이 흘러 대학을 나오고 교단에 서게 된 첫해 교사들의 문화기행 중 들꽃에 관한 기행이 있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들꽃의 존재를 크게 깨달았지요. 그 뒤로 내 주변에 있는 많은 꽃들이 자

기들의 이름을 불러주라고 속삭이는 듯했지요. 그래서 나의 눈은 들꽃으로 많이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쁜 꽃을 사진으로 찍어도 보고, 꽃이름들을 도감에서 찾아보고 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지요. 아이들과 들꽃채집을 했어요. 패트병을 잘라 화분을 만들어서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온갖 들꽃들을 하나씩 담아가지고 교실로 와서 키우는데 얼마가지 않아 다들 시들어죽어버리더군요. 죽을 시기가 되었나보다 생각했지요. 몇몇 화분의 흙은 갖다버리고 몇 개는 창밖에 내두었어요. 풀하나없이 흙만 있던 화분이 우리의 무관심속에 많은 시간을 보냈지요. 하지만 우리만 관심이 없을뿐 하늘의 햇님과 비는 그 화분을 정성으로 키웠습니다.

어느날 문득 창문을 열었는데 풀하나 없이 흙만 있던 화분에 온갖 새싹들이 자라났어요. 물론 이름모를 풀들이였지요. 나는 그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큰 감동이였는지 모릅니다. 하루종일, 그리고 그 이후 식물은 늘 나에게 신비롭고 감동스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책을 통해서 씨앗의 휴면과 밤낮의 주기를 알고 싹이 튼다는 사실을 알았고, 동물처럼 신경기관이 없어도 기후와 주변환경에 적응하며 치열하게 종족을 보존해간다는 사실을 알고 느끼면서 식물은 나에게 아주 친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얼어붙은 땅이 녹으면서 아기처럼 보드라운 새싹을 틔우고, 멀리보이는 자디잔 연녹색의 물결, 그것은 마음을 뒤흔드는 생명의 물결입니다. 은 그렇게 나의 마음을 설레임으로 채웁니다.

주위가 온통 푸르른 녹음의 여름, 그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상쾌해집니다.

씨앗을 맺는 가을, 식물들은 내년을 위한 준비로 바쁩니다. 갖가지 방법으로 씨앗을 맺고, 터트리고, 멀리 보냅니다. 그 다양함과 적응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난히 보랏빛이 많은 가을산꽃. 무리진 꽃들은 꽃들대로 정겨움을 볼 수 있고, 아무도 몰래 살짝이 내민 홀로 핀 꽃들은 꽃들대로 부끄러움과 함께 강인함을 느낍니다.

 잎이 다 떨어진 겨울나무들. 앙상함보다는 여유로움으로 나의 마음을 일깨웁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들. 자기 잎을 떨군 안타까움과 대범함이 있었기에 나뭇가지 사이에 그 넓은 하늘을 담을 수 있나봅니다. 하늘을 담았다는 것은 채운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어떤 것이든,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여유로운 공간을 의미하는것같습니다.

왜 꽃들과 나무를 좋아하냐고 하면 이유를 대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나또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그냥, 좋아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나의 마음을 즐거움과 감동으로 채워주는 그 식물들이 그저 좋을 뿐입니다.

<2002년 10월 박향순>

 쟁기 마·승·희씨앗 박·향·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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